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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없음은 공(空)도 불확실함도 아니었다. 그냥 무 그 자체였다. 그것은 신이 보기에 좋았다. ... ...

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삼키고 소화시키고 그 직접적 결과로 배설하는 것 뿐이었다.

신은 제 몸이 하는 식물성 활동을 의식하지 못했다. 한결같은 음식은 신의 주목을 끌 만큼 자극적이지 않았다.

신은 고체성과 액체성 먹거리가 제 몸을 관통하도록 모든 필요한 구멍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가리켜 파이프라고 부른다."

 무에서 시작해 한 명의 인간이 되는 기간인 0살에서 3살까지의 삶. 그 동안 아기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다.

하늘 위가 아닌 모든 세상의 주인. 의문이 아닌 해답만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아기는 만물 위에 군림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고, 사물들과 사람들은 그녀가 불러주는 이름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녀의 눈높이에 고개숙여 그녀를 숭배하였다.

 어찌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듯한 상상력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작가 아멜리 노통이 자신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건방지고 당돌한 생각을 지닌 아이와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눈은 조금 색다른 해석을 통해서 '신'으로 군림하던 아기를 보여준다. 아줌마들이 모여서 떠들법한 아기의 작은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얼마나 재미있고 귀여운지, 그리고 그런 에피소드들을 모아 이렇게 문학적이고 사색적인 생각을 하는 신으로서의 아기를 표현해낸 작가가 얼마나 멋있는지.

 내가 어렸을 때는 어땠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때로 2살 무렵의 기억까지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머 이걸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말이다.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5~6살 무렵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인듯. 아니, 4살 때 지금 살던 동네로 이사를 오던 무렵부터인것 같다. 외삼촌 차에 타서 신나하며 이사하던 내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니 말이다.

 '그럼 나는 '신'으로 존재하던 시절의 기억은 하나도 지니고 있지 않은 거군.' 하고 생각하니 슬프다. 어찌보면 인생에서 가장 건방지고 빛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기억이 안난다니!

재미있었다. 나보다도 화려한 문체로 생각을 해대는 자칭 신인 응석받이 아기의 이야기.


[ 오후 네시 - 아멜리 노통브]

Hobby/Book 2007.10.11 17:29 Posted by BlueFeb

오후 네 시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 김남주 옮김

출판사     열린책들


 상식과 지식, 사랑과 이해, 경험과 연륜이 통하지 않는 존재의 등장,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는 '옆집 남자'의 이야기.


 무언가 해답을 주지도 않고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생각들 많을 뭉뚱그려서 '덜커덩!' 내려놓다니. 노통브는 진짜....


 알아오고 믿어온 모든 것들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사람은 결국에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하게 된다. 60, 70 인생을 다 알았다 생각하는 나이가 되더라도 그렇다.

 당황과 혼란, 불신과 의혹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법.

 어째서 우리네 인간은 그렇게 자신이 믿는 것에 안주하길 바라는 걸까.

 어째서 잃어 버린 것은 더 크고 아깝고, 가지고 있는 것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짧은 글로 독자를 들었다 놓아버리는 노통브의 또 하나의 소설.


[ 시간의 옷 - 아멜리 노통브 ]

Hobby/Book 2007.10.11 17:27 Posted by BlueFeb

시간의 옷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 함유선 옮김
출판사 열린책들

 폼페이의 멸망은 어떠한 음모?

 처음부터 끝까지 한 두 문장을 빼고 모두 대화로 이루어진 책.

 정신없이 읽으며, 모험 아닌 모험, 추리소설 아닌 추리소설에 빠져들어 볼 수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된건가! 라는 의문의 답을 구하는 우리 공학도의 시선이 아닌, 철학자와 문학도, 고고학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시간에 대한 작가의 망상? 은 읽는 이를 정신없게, 그리고 즐겁게 해준다.

 결국에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들어놓고서 이 글이 사실이라고 우기는, 표현을 옮기자면 '나이만 먹은 악동'인 아멜리 노통브의 '자칭' 경험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느꼈다.

 ( 아니;; 느낀 게 별로 없다. 이 사람 정말 말 잘하겠구나, 이 사람 정말 생각 많이 하는구나, 이 사람 정말로 정말로 혼자서도 잘 놀겠구나. 하고 느꼈지만, 그런 걸 감상문에 적을 수는 없지 않은가!

 도대체가 이런 책을 거침없이 써 놓고도 당당한 아멜리 노통브와 읽으면서 감탄해 놓고는 감상문 쓸 거리가 없다고 투덜대는 독자는 어떻게 된 조합인지.

 근데, 두고 두고 있으면 또 보고 싶어질 듯한 그런 책. 자기 통찰과 '비꼼'의 미학이 숨어있는 책. 이라고 하면 되려나. 체. 쳇. 쳇 <- 이건 책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