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드나이터스 1, 2, 3 ]

Hobby/Book 2010.01.05 23:31 Posted by BlueFeb

스콧 웨스터펠드의 미드나이터스 1, 2, 3 권은 매우 속도감이 있는 판타지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인 아이들은 1분도 늦거나 빠르지 않고 정확히 자정에 태어난 아이들로,

미국의 빅스비 마을에서는 자정부터 잃어버린 1 시간을 더 사는 '미드나이터' 이다.


서로 다른 능력을 지닌 미드나이터들이 티격태격하면서도 마을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슈퍼히어로틱한 이 판타지 성장 소설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힘들고 문체도 매우 부드러워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빠르게 읽어 나아갈 수 있었다.

작가인 스콧 웨스터펠드의 다른 작품들을 찾기 시작한 지금,

나는 또다른 행복감에 젖어 있다.

[ 펠릭스 캐스터 1 : 돌아온 퇴마사 ]

Hobby/Book 2009.08.06 20:46 Posted by BlueFeb
[ FELIX CASTOR  펠릭스 캐스터 1: 돌아온 퇴마사 ]
마이클 캐리 저 김양희 옮김


' 영화 콘스탄틴의 원작 만화 스토리 작가라고?
제 2의 닐 게이먼 이라고?

이거 내가 좋아하는 장르잖아. 유머 위트 철학 중세풍 판타지. '

이렇게 고른 책.

후회는 없었다. 콘스탄틴처럼 크고 무거운 총이나 가제트를 사용하지 않지만
명석한(?) 두뇌와 입심, 임기응변, 그리고 피리나 휘파람을 이용하는 주인공 펠릭스는,
이름이 어떤 고양이와 같다는 것만 빼고는 마음에 쏙 들었다.

서른 중반이나 돼서는 아이와 같은 행동과 영혼을 지닌 주인공과 시기 적절하게 쏟아지는
유쾌한 블랙 유머와 헛소리, 그리고 빠른 상황 전개는 읽는 내내 내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다.

다음 시리즈가 꼭 나올 수 있기를.

[ 벨로아 궁정일기 1, 2 - 장세진 ]

Hobby/Book 2009.02.23 22:06 Posted by BlueFeb

벨로아 궁정일기 1, 2권  ★★★
( 장세진 저 / 넥스비전 미디어웍스 )

작가의 이름만 찾아 책을 읽거나 가끔 서점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골라서 책을 사 읽는 내가

유일하게 '출판사' 에 연연한다면 그곳은 휘긴경 - 홍정훈 님 - 이 만드신 넥스비전 미디어웍스다.

장르 문학이 무협지, 판타지라고 불리며 마이너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당당하게

성공한 한 명의 작가에서 이제는 사장님이 되버리신 홍정훈님의 넥스비전 미디어웍스는,

계속해서 출판되는 참신한 신예들의 소설도 볼거리이지만, 월야 환담 채월야, 쿠베린, 데로드 앤 데블랑 등

시대를 풍미한 판타지 소설들을 애장판으로 재 출간하는 '에픽 북스' 프로젝트로 아마 사람들에게서

수 많은 러브콜과 관심, 그리고 애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이고 말이다.


각설 하고, 벨로아 궁정일기는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판타지는 잊어라!' 라는 표어가 표방하듯,

판타지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한 나라의 궁정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재상 '각하'의 '비서관'으로

뽑힌 유능한 소년(?) '데그 디엔'이 주인공이다.


외우기 쉬운 주인공 이름도 재미있지만, 벨로아 궁정일기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정치가의 일상'을

유머와 풍자, 그리고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로 잘 버무려서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든다.

특히, '국가 기밀 사항 입니다'를 선두로 하는 소위 '마법 주문'들은 정말로 읽는 나를 피식하게 만들었다.

매 화 특정 주제 ( 권력 다툼, 왕세자의 결혼식, 부정 척결 )를 이슈로 다루면서도, 끊김 없이 부드럽게 흐르는

전체적인 주인공의 성장기는 정말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감탄.


자칫 잘못하면 헷갈리기 쉬운 이름들이 중구난방 등장하고 독자를 헷갈리게 할 것 같건만, 이 책은 이러한

우는 범하지 않고, 읽는 내내 깔끔하게 등장 인물들을 머릿속에서 정리되게 해 주고, 독창적인 케릭터 부여로

살아있게 만든다.


간만에 재능 있는 작가의 흥미로운 작품을 읽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책을 쓸 지가 심히 궁금해 지는 작품.

검과 마법에 찌든 그대여, 벨로아 궁정으로 떠나라!




[ 황혼녘 백합의 뼈 - 온다 리쿠]

Hobby/Book 2009.02.10 20:54 Posted by BlueFeb

황혼녘 백합의 뼈 ★★★☆
( 온다 리쿠 저, 권남희 역 / 북폴리오 )

정말 좋아하는 작가 온다 리쿠의 추리, 스릴러, 공포를 잘 버무려낸 소설.
'삼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건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역자의 말에서야 알았다.

책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 도무지 연작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한 권 만으로도 충분히 그 포스가
느껴지는 작품.

황혼, 백합, 뼈라는 자극적인 제목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일단 읽다보면 호러보다 더 으스스하고
무언가 뒤틀린듯한 세계관에 같이 빠져들게 된다.

읽다가 조금 지루해 질만 하면 터지는 의혹과 사건,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은 독자들에게 충분한 즐거움과
희열을 주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마지막 반전이 아니었다면 저 만큼 높은 별을 주지는 않았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리세와 요한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이거, 잘 풀어내면 신본격 장르보다 더 본격적이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명 작가 온다 리쿠의 작품.



[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Hobby/Book 2009.02.09 02:35 Posted by BlueFeb

인사이트 밀 (Incite Mill) ★★★★
( 요네자와 호노부 저, 최고은 역 / 학산문화사 )

언제나 추리소설에 목마른 내게 간만에 유희.

'자극하는 제분소, 선동하는 제조 공장' 등으로 번역되는 제목 부터가 ' 음. 밀실 살인이군. ' 하는

유추가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 정체를 알 수 없는 참가자들의 동기( 어느 참가자가 어떤 동기의 인물인지는

끝까지 밝히지 않는다)에서 시작하여 주인공의 시점으로 넘어가는 전개는 참신했고,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앞장을 다시 뒤적거리게 만들었다.

우왕 ㅋ 굳. 이라는 감탄사가 나오게 만드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였다고나 할까.


주제는 '밀실에서의 집단 실험'.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는 알바 광고를 보고 모여든 인물들은

제각각 다른 동기를 가지고 실험에 참여하여, 서로 죽이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흥미로운 점은, 실험의 주체는 '로봇' 이라는 첨단 장비를 이용하여 실험에 특수한 '규칙'으로 간섭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일반 독자들의 추리는 더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고전이나 일반적인 생활에서 일어나는 추리극에서 범인을 초반부터 너무 쉽게 짐작하고

작가보다 한발 더 빨리 추리를 해 내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일종의 '도전장'이요,

추리소설에 현대, 근 미래의 기술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접목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지침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인물부터 간사한 인물, 리더쉽 있는 인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물까지

고른 인간상을 모두 선택하고 이들이 각각의 목적에 따라 추리와 의혹을 키워 나가는 전개는 정말로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하고, 과도기에서 새로운 흥분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수작 중 하나로 가히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는 수작!!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전반을 통해 '고전 추리소설'의 오마쥬나 인용, 그리고 복선이 너무

짙게 깔려 있다는 점. 고전을 모두 독파하고 있는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이 책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정도 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이러한

오마쥬와 복선은 단지 하나의 참고 거리일 뿐,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별 하나 감점하여 별 4개.


그래도 최근에 읽은 추리소설 중 가장 참신하고 독창적이며 흥분되는 책이라는 점은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마일즈의 전쟁  ★★★★★

( 마일즈 보르코시건-01 / 행복한책읽기 SF 총서-012 )

은 오랜만에 찾아온 보물이었다.

SF를 사랑하는 내게 우주, 전쟁, 그리고 유머는 빼 놓을 수 없는 매력인데, 이 책은 이러한 3박자를 모두 갖추고도

모자라 완벽한 심리전과 빠질 것 없는 지략으로 읽는 내내 뒷장을 예측할 수 없게 하였고, 주인공의 흥분과 피로,

그리고 성취감을 거의 완벽히 내게 공유해 주었다.


발단은 매월 빠지지 않고 서점에 들려 구매하여 읽는 Fantastique 소설 잡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라는 이름의 작가의 소설로 소개하는 중편 '미궁' 을 통해, 나는 완전히 그 세계관과 마일즈

보르코시건, 그리고 벨 쏘온의 매력에 빠진 뒤었다.


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마일즈 네이스미스 함장의 모습은 키작고 마른 중년의 유머감각과 위트 넘치는 절름발이

였기에, 그러한 덴다리 용병대 ( 곁다리 용병대가 자꾸 생각나는 건 왜일까.. ) 마일즈 네이스미스 함장의 실체와

덴다리 용병대가 단순히 그의 머릿속에서 급조된(?) 거대한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정말로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의 어린 나이라니!! 나보다도 어린 주제에! 용병대를 좌지우지하는 그 깡과 지략은 정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같이 웃고 손에 땀을 쥐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장.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상을 다 주어도 아쉽지 않을 소설,

'마일즈의 전쟁'을 소개한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두 권의 책 - 오쿠다 히데오]

Hobby/Book 2008.07.28 04:06 Posted by BlueFeb
한 주를 맞이하는 월요일 새벽에 잠 못 이루고 쓰는 독서 후기.

나도 소설이나 써볼까 하는 소심하고 단순한 질문에 옆에서 방관하는 자세로 세상을 비웃던 룸메가
애들 다 키우고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그 때에나 꿈꿔 보시지 라고 대답해서, 다시 한번 소심하게
발끈. 요즘엔 애들 다 키워서 대학 졸업시키면 예순이 넘어 라고 반박했다.

부드럽지만 축축하다 못해 눅눅한 여름 새벽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은 실소.



오츠이치의 고스(GOTH)


 고스. '죽이는 자와 죽는 자가 있다면 나는 전자다' 라는 강하고 거침없는,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모든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문구로 날 유혹한 책.

 학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눈에 띄어 일말의 미련이나 의문도 없이
'응 알았어.' 하고서 들고 나왔다. 물론 계산은 치르고.

 수 많은 영화와 소설, 심리극, 추리물 들에서 익히 익숙해진 반전을 나는 예상치도 못한 책 속에서 무려
3 번이나 경험하며 그 희열에 몸을 떨었다. '모야 이거, 그런거야? 이 놈이 범인이란 말야?' 란 말이 어울리는
반전은 너무 식상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영화나 소설에서는 대부분 범인을 맞추는 요즘 세상 청년인 날 흥분
시키는 반전이 아직 있을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기대하지도 않은 형태로.

 처음 읽을 때에는 너무 잔인하고 비뚤어진 작가의 사상에 반감이 들었지만, '조금 더 보자' 라는 생각으로 날
채찍질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마지막장. 아쉬움에 한숨이 나왔다. 휴우. 재밌어. 이거 대단한걸?
상상력이라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플롯과 당연하게 생각하는 설정을 단숨에 뒤집어 독자를 흔들고 의문하게
만들고 당황시키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 투 썸즈 업!

 방금 찾아보다가는 '절판' 이라는 YES24의 검색 결과에 다시 한번 경악.
이런 식으로 내게 찾아온 행운은 꽤 날 즐겁게 해 준다.

 오츠이치. 잊지 않겠어.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고스와 함께 응? 이건 모지? 하며 골라서 산 책. 오쿠다 히데오의 첫 작품(데뷔작) 이라는데, 왜 국내엔
올해 4월에 나온거야! 하며 의아해서 골랐다.

 역시. 심혈을 기울인 이야기 전개와 물 흐르듯 유려하게 흐르는 심리 묘사. 그림 그리듯 설명하는 분위기와
기분에 감탄. 또 감탄. Working Class Hero라는 철자가 새겨진 T 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존이 생각나
웃음을 금치 못했다.

 소시민적인 감성과 특이하지 않지만 당사자에겐 매우 중요한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사건을 부드럽게 풀어가며
독자를 끌어드리는 히데오의 스토리 텔링에 '남쪽으로 튀어!' 이후 다시 한번 감탄.
이 책 천천히 읽고 싶다. 라고 생각하게 한 오랜만의 작품.

[ 어둠의 저편 - 무라카미 하루키 ]

Hobby/Book 2007.10.11 17:39 Posted by BlueFeb
어둠의 저편.

 제목이 너무 난해하잖아. '어떤 밤에 일어난 일' 이라든지,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밤' 이라든지 더 쉬운 제목도 있을 듯한데...

 간단하게 말하면 하룻밤동안 한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을 써놓은 소설이지만, 그리 내용은 간단하지 않다. 난해를 넘어서 왜 이런 얘기가 사이사이 나오는지 이해도 안 갈 정도. 그래도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루키답지 않은 소설이라고 생각도 들고. 머 결국에 가서는 그렇구나, 이건 하루키가 썼구나. 라고 납득해 버렸지만.

 자타 공인하는 밤의 아들인 나로써, 꽤 현실적인 이 이야기는 새삼 놀랍지 않았다.
낮에는 활기차지만 밤에는 그 색깔이 돌변해 문자 그대로 '어둠'이 되어버리는 거리. 그 어둠에 어울리지 않는 등장인물과 어둠에 어울릴 만한 사건들. 자신 속의 어둠을 가지고 얼마만큼은 방황하고 또 얼마만큼은 납득해버린,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 그리고 어둠을 너무 잘 아는 어른들. 어둠 속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에리.

 책은 마리에게 일어나는 일과 에리의 어둠, 그리고 완전한 어둠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름이 생각 안 난다. 집에 와버렸는데, 여긴 책도 없어서.. 네 글자 였는데..?)을 반복적으로 시간 순서에 따라 등장시킨다. 단락을 시간 순서로 나누는 방법은 이제껏 많이 보았지만, 시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건 꽤 신선했다.
처음엔 그냥 책들이 단락 앞에 넣는 의미 없는 그림으로 알고 넘어갔을 정도였으니. 에리의 어둠과 방, TV의 묘사는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카메라 워크, 그리고 감독과 조연출이 된 기분의 독자와 스토리 텔러로 나누어져 단순한 묘사가 이정도로 까지 재미있게 표현될 수 있구나. 라는 즐거움을 주었다. 신선하다고?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아쉽게도.

 누구에게나 어둠은 있다. 영화의 제목 같지만, 이건 말만 하지 않을 뿐 다들 아는 일이다. 사람이 이룰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들 한다. 영원히 사는 것과 나쁜 짓을 하나도 하지 않고 사는 것. 철들지, 아니 때 묻지 않은 아이일지라도 영악한 짓을 하곤 하는데 심지어는 알걸 다 아는 어른들은 오죽할까. 각자의 트라우마와 그들이 지고 있는 어깨위의 무거운 짐들은 사람들을 힘들게, 괴롭게 하고 그들에게 어둠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려 애써 결국에는 행복하고 누가 봐도 멋진 삶을 살아가는 인물도 있지만, 순응하고 어둠과 동화되어버리는 인물도 있다. 꼭 어떤 것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이미 나는 이 세상이 내게 준 무게가 쉬이 이겨낼 만큼 가볍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는 탓하여야겠지만 마음의 어둠까지 비판할 정도로 내가 잘났다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어느 정도의 어둠은 감싸 안을 줄도 알게 되었다.

이러면서 어른이 되는 건가? 하는 약간의 한숨과 함께.

[ 칼의 노래 - 김훈 ]

Hobby/Book 2007.10.11 17:36 Posted by BlueFeb

 솔직히 이순신 위인전은 실망 그 자체이다. 비장하게 시작하여 비장하게 끝나는 문자그대로의 '위인'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가장 쉽게 떠올리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이 이름값은 정말로 이순신에 대한 책이란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게 하였다.


 쉽게 몰입하기 어려운 초반을 문체에 감탄하며 읽고, 약간은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식상한 문체들로 담담하게 이어지는 '김훈' 이 살을 붙인 '이순신'은 보통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으뜸으로 꼽는 미덕을 지니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무력함과 사회의 무자비함, 인간의 비열함에 슬퍼하고 지인과 혈육을 뼈저리게 아퍼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다른 것이 있다면 필요한 때에 적당한 용기와 판단력을 발휘하는 것... 정도일까.

 이순신을 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그리 못할 것 같다고는 굳이 그림을 그려보지 않아도 빤히 보이기에.


 숨가쁘게 달리고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의 당연한 평화와 여가생활은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죽을 수 없기에 가진것을 모두 버리고, 죽음을 당연시 여기며 살아가는 평민들. 혈육을 잃은 분노로 자신을 잃어 오로지 복수의 일념만 남아버린 사내들. 당장 내일 먹을것을 걱정하고 눈 앞의 칼을 걱정해야 하는 하루하루들. 너무 실감나고 너무 아파서, 책을 놓고 싶어진 때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또 책을 놓기 싫어지기도 하였고.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이기에.


 아프고 아파서 쓰러질것 같으면서도 포기를 모르는 사람을 보면서도 감격과 환희,영웅심같은 단어는 떠오르지도 못했다. 존경과 동경.. 정도가 맞을듯 싶은 이상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혀 이순신은 내 손에서 다시 그의 삶을 살았다.


 여담으로,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군. 후세에 무얼 남기고자가 아니라 자기를 하루 하루 돌아보는데에 그만큼 좋은 수단은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매일 쓰는 일기가 이순신을 보통 사람과는 다른 보통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준것 같다고 느껴진다.


 여담 두 번째. 아. 소설가는 정말로 나랑 너무 먼 사람들이군. 단어와 문장, 그리고 어투 마저도 감격. 감격. 감격.

 번역소설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맛이지. 우리 한글로 쓰여진 문장들이 가지고 있는 맛은.

[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Hobby/Book 2007.10.11 17:35 Posted by BlueFeb

 읽으면 읽을수록 모호한 스밀라의 생각들은 머릿속을 파고들어, 오히려 원래의 줄거리인 남작의 죽음 보다도 더욱 설득력 있게 내게 다가온다.

 37살. 그린란드에서는 평균 수명과도 같다는 그 나이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순수함보다는 냉정함을, 관용과 인내보다는 이기주의를 택한 주인공은 결코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인간상임에도 친숙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그만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이야기인건가? 아직 20대 중반도 되지 않은 내가?

 뛰어난 두뇌를 지니고 있지만 그보다는 삶을 통달한 듯 한 마디 한 마디를 쓰게 씹어 내뱉는 스밀라의 매력은 그 독설과 주저하지 않는 행동력에 있음이라고 나름 생각한다. 요즘 세상이 원하는 쿨한 인간상도 아니요, 과거의 사람들이 말하는 인의예지를 지키는 사람도 아닌 스밀라는 그래서 매력이 있다. 그래서 독특하다. 주인공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액션배우로, 추리와 결단에서도 빠지지 않는 탐정으로 그렇게 다가와서는 두근거리게 만들고 사람 머리를 휘저어 놓고는 나가버렸다.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내 인생은 이랬는데 너는 어떻게 살지 관심 없다는 듯이. 세상이 자기를 위해서 돌지 않아도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말하듯이.

 관조하는 자세로 세상을 비판하며 반항기 있는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다가온 한 가지 숙제가 바로 남작의 죽음이었다면, 이제까지 이렇다 할 특징없이 살아온 내게 그러한 과분한 숙제는 내려질 수 있을까? 과연 내려진다면 언제?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을까?

 160에 50키로인 37살의 여성보다 심약하고 나약한 나를 보았다. 라기보다는 그녀가 너무 특별한거야.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얼마나 있다고. 그래도 역시 한 구석에서는 그녀를 보고싶고, 그녀에게 끌리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아아. 바보같은 인생아. 한없이 무력한 사람아. 머가 그리도 힘들었단 말이냐.

 가지지 못한 만큼 욕심을 내는 사람보다는 가지고서는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선인과 악인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세상은 멋대로이고 사람 마음은 알기 어렵다. 어린 나이에 꿈을 포기하고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버린 안타까운 남작과 남작의 죽음을 손놓고 바라보는 남작의 어머니. 그리고 아무런 관계도 없으면서 눈에 대한 감각과 자신의 이기적인 확신만으로 목숨을 위협해 가는 두 남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섬뜩하다. 사람의 악함이 이보다도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욕심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결국에는 소설인걸. 무언가 배우지 않아도 되는걸. 스밀라의 삶은 스밀라의 것일 뿐 동정하고 우러러 보지만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진 않은걸. 방황하면서도 순간의 선택이 필요할 때에는 주저하지 않는 그녀에게 단지 동질감을 느끼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게 읽었다. 모처럼 긴 소설을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어서 기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