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이다. 제목만 읽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버렸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인 책.

너무 짧은 단편에 뒤가 궁금하고 앞이 의문스러워서 여러 번 들춰보게 되는 책.


어째서인지, 아직 덜 익은 나는 세상은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나보다.

겉보기보다 더럽고 지저분한 사람들의 내면과, 쉽게 무너져버리는 인간의 취약함을 애써 들추지 않으려고 밝게만 밝게만

상상하고 있었던 듯싶다. 이런 나를 비웃듯이 이 책은 깊은 고찰과 냉정하지만 결코 감성이 메마르지 않은 풍자와 묘사로

머릿속과 가슴을 마구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흔들어 놓았다.



이기주의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다.

아니라고, 안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하면 물론 그렇다. 마더 테레사, 예수, 부처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순교자들과 성인들.

하지만 정작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 내가 부딪히고 대화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연약하고 이기적이어서

의지할 곳이 없으면 금방 무너져버리는 퍼즐 조각과도 같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에 사로잡히고 아집과 편견은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한다.

자신의 흠보다 타인의 흠이 조금이라도 더 크길 바라고 타인의 욕심은 자신의 욕심보다 수준 낮고 추잡해 보인다.

물질사회와 문명의 이기까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이런 건 속칭 '세상'을 살다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규칙과 타인과의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중심적으로 정당화되고 자위하는 행동들.

그러한 행동의 뒤에 남는 씁쓸한 여운들.


세상으로 한 발씩, 조금씩 분위기를 살피어 나아가며 순진하고 속기 쉬운 어린 양이 아닌 것처럼 보이려고 괜히 다 아는 듯,

얼굴에 조금씩 두텁게 마취제를 뿌려가는 지금의 나에게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다른 편으로는 충격적인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조리와 내면의 나약함,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저분하지만 동정 가는 본성들.

그런 것들을 모아놓은 그런 소설책.



지금의 나로썬 쓸 생각도 못하는 단편들이다.

매우 짧은 것들임에도, 매우 단순해 보이는 문체임에도 그건 아직 내가 범접하면 안되는,

마치 붙잡으면 무언가 내 속이 허전해 질 것 같은 그런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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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없음은 공(空)도 불확실함도 아니었다. 그냥 무 그 자체였다. 그것은 신이 보기에 좋았다. ... ...

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삼키고 소화시키고 그 직접적 결과로 배설하는 것 뿐이었다.

신은 제 몸이 하는 식물성 활동을 의식하지 못했다. 한결같은 음식은 신의 주목을 끌 만큼 자극적이지 않았다.

신은 고체성과 액체성 먹거리가 제 몸을 관통하도록 모든 필요한 구멍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가리켜 파이프라고 부른다."

 무에서 시작해 한 명의 인간이 되는 기간인 0살에서 3살까지의 삶. 그 동안 아기는 인간이 아닌 신이었다.

하늘 위가 아닌 모든 세상의 주인. 의문이 아닌 해답만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아기는 만물 위에 군림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고, 사물들과 사람들은 그녀가 불러주는 이름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녀의 눈높이에 고개숙여 그녀를 숭배하였다.

 어찌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듯한 상상력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작가 아멜리 노통이 자신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건방지고 당돌한 생각을 지닌 아이와 아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눈은 조금 색다른 해석을 통해서 '신'으로 군림하던 아기를 보여준다. 아줌마들이 모여서 떠들법한 아기의 작은 에피소드 하나 하나가 얼마나 재미있고 귀여운지, 그리고 그런 에피소드들을 모아 이렇게 문학적이고 사색적인 생각을 하는 신으로서의 아기를 표현해낸 작가가 얼마나 멋있는지.

 내가 어렸을 때는 어땠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때로 2살 무렵의 기억까지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머 이걸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말이다.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5~6살 무렵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인듯. 아니, 4살 때 지금 살던 동네로 이사를 오던 무렵부터인것 같다. 외삼촌 차에 타서 신나하며 이사하던 내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니 말이다.

 '그럼 나는 '신'으로 존재하던 시절의 기억은 하나도 지니고 있지 않은 거군.' 하고 생각하니 슬프다. 어찌보면 인생에서 가장 건방지고 빛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기억이 안난다니!

재미있었다. 나보다도 화려한 문체로 생각을 해대는 자칭 신인 응석받이 아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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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신 치바 - 이사카 코타로 ]

Hobby/Book 2007. 10. 11. 17:32 Posted by BlueFeb

사신치바
지은이 이사카코타로 | 김소영 옮김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샐러리맨' 사신인 치바가 겪는 인간들의 죽음에 대한. 아니 삶에 대한 이야기


 '인간들이 만든 것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음악'이고, 가장 쓸데 없는 것은 '정체' 이다.'

를 외치며 자기의 일을 아무런 불만 없이 꿋꿋하게 수행하는 한 명의 샐러리맨 사신은 객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어투와 질문으로 다양한 인간상들을 보여준다.

 어떤 삶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대답은 안 나와있지만. 죽음은 해가 지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책.

 하지만 인간들은 그 죽음에 메여서 수 십년의 시간을 그냥 보내기도 하지.


 하나 더 생각나는 구절은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시간의 모임이다' 였던가.

 어떤 철학자가 한 말이라던데... 그런가? 그런가!


 '저 폭포에서 흘러내려 강이 되는 물과 우리네 인생도 많이 비슷하다.

 태어나면 수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기대를 받으며 사랑받지만, 나이를 먹고 자라면 넘실넘실 특별히 소용돌이치지 않고 흘러가게 된다.'

 절실히 느껴지는 요즈음.


 사신으로 살면서 음악과 일에만 심취해 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유쾌한 상상력과 꽤나 감탄하면서도 공감하는 통찰력이 재미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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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OLUTION No3 - 가네시로 카즈키 ]

Hobby/Book 2007. 10. 11. 17:30 Posted by BlueFeb

레벌루션 No. 3


지은이     가네시로 가즈키 | 김난주 옮김

출판사     북폴리오


 가네시로 가츠키는 이미 영화로 나와 유명한 'GO' 와 'Fly, Daddy, Fly' 의 원 저자이다.

 둘 다 내가 너무 좋아했던 영화.

 재일 교포로서는 처음으로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아버지의 전향과 함께 매국노 소리를 들으며 차별을 감수해야 했던 힘겨운 삶을 살던 학생이었다 한다.


 머리를 헤집는 흥분과 난해, 그리고 고민과 박식에 대한 책이 그리우면 아멜리 노통을,

후련함과단순 '무식'함, 그러면서도 고뇌와 아픔이 섞여 있는 책을 읽고 싶으면 가네시로 가츠키를.

 법학부에 진학했다가 소설가로 전향한 '유식한' 재일교포는 자신의 자전적 소설들을 써 나아가며 세상에 동화되고, 공감받고, 박수받는 존재가 되었다.


 부럽기도, 안쓰럽기도.

 아뭏든, 산 지 하루만에 후닥닥 읽어버린 책.

 사신 치바도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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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네시 - 아멜리 노통브]

Hobby/Book 2007. 10. 11. 17:29 Posted by BlueFeb

오후 네 시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 김남주 옮김

출판사     열린책들


 상식과 지식, 사랑과 이해, 경험과 연륜이 통하지 않는 존재의 등장,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는 '옆집 남자'의 이야기.


 무언가 해답을 주지도 않고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생각들 많을 뭉뚱그려서 '덜커덩!' 내려놓다니. 노통브는 진짜....


 알아오고 믿어온 모든 것들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사람은 결국에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하게 된다. 60, 70 인생을 다 알았다 생각하는 나이가 되더라도 그렇다.

 당황과 혼란, 불신과 의혹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법.

 어째서 우리네 인간은 그렇게 자신이 믿는 것에 안주하길 바라는 걸까.

 어째서 잃어 버린 것은 더 크고 아깝고, 가지고 있는 것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짧은 글로 독자를 들었다 놓아버리는 노통브의 또 하나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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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의 옷 - 아멜리 노통브 ]

Hobby/Book 2007. 10. 11. 17:27 Posted by BlueFeb

시간의 옷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 함유선 옮김
출판사 열린책들

 폼페이의 멸망은 어떠한 음모?

 처음부터 끝까지 한 두 문장을 빼고 모두 대화로 이루어진 책.

 정신없이 읽으며, 모험 아닌 모험, 추리소설 아닌 추리소설에 빠져들어 볼 수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된건가! 라는 의문의 답을 구하는 우리 공학도의 시선이 아닌, 철학자와 문학도, 고고학자의 시점으로 바라본 시간에 대한 작가의 망상? 은 읽는 이를 정신없게, 그리고 즐겁게 해준다.

 결국에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들어놓고서 이 글이 사실이라고 우기는, 표현을 옮기자면 '나이만 먹은 악동'인 아멜리 노통브의 '자칭' 경험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느꼈다.

 ( 아니;; 느낀 게 별로 없다. 이 사람 정말 말 잘하겠구나, 이 사람 정말 생각 많이 하는구나, 이 사람 정말로 정말로 혼자서도 잘 놀겠구나. 하고 느꼈지만, 그런 걸 감상문에 적을 수는 없지 않은가!

 도대체가 이런 책을 거침없이 써 놓고도 당당한 아멜리 노통브와 읽으면서 감탄해 놓고는 감상문 쓸 거리가 없다고 투덜대는 독자는 어떻게 된 조합인지.

 근데, 두고 두고 있으면 또 보고 싶어질 듯한 그런 책. 자기 통찰과 '비꼼'의 미학이 숨어있는 책. 이라고 하면 되려나. 체. 쳇. 쳇 <- 이건 책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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